검색결과
' 김재규'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2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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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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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경력과 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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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79677
날짜 : 1979.12.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가족과 경력, 성품 등에 대한 기록(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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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사태 김재규 구명운동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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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75658
날짜 : 198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10.26 사태로 박정희와 차지철을 권총으로 사살한 김재규에 대한 구명운동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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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등의 구명을 위한 청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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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79771
날짜 : 1980.03.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부장 김재규 관련 문서. 10.26사태는 민주회복을 위한 것이므로 김재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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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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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검증 중인 김재규. 박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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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0837
날짜 : 1979.11.07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김재규가 팔에 관통상을 입고 화장실로 피신한 차지철을 다시 쏘려고 했으나 격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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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검증 중인 김재규. 박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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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0838
날짜 : 1979.11.07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김재규가 부상을 입고 피신한 차지철을 사살하려다 권총 격발 불능으로 박선호가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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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사건을 재현하는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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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0839
날짜 : 1979.11.07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김재규는 그의 왼쪽에 앉아있던 차지철에게 권총 1방을 쏜후 그의 맞은편에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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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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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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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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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동행_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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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지금 천지가 개벽했습니다. 김대중 선생님이 위험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죽은 뒤, 헌법정신을 짓밟은 긴급조치가 4년 6개월 만에 사라지고, 남편 김대중의 연금도 226일 만에 풀렸다. 민주주의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감옥과도 같던 동교동 집 대문이 활짝 열리고 경찰이 철수했으며, 매일 수백 명의 방문객이 김대중과 이희호 부부 집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계엄령이 발휘된 상태였고, 연금은 풀렸지만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태였으므로 남편은 실질적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이희호는 비서를 불러 집 주변을 살펴보게 했다. “여사님. 이상하네요. 근처 보안등이 다 꺼져 있고, 검은 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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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마, 여기가 어딘 줄 알아?"_ 무법자의 폭력이 춤추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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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복수의 칼날을 엉뚱하게 민주 인사들에게 퍼붓고 있었다. “야 이 새끼들,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김재규도 여기서 피똥 싸고 벌벌 기어서 나갔어! 김종필이도 살려달라고 엉엉 울더라고. 좋아, 오늘이 니들 제삿날인 줄 알아!” 건강한 사내들은 미친 듯이 날뛰며 외쳤다. 맷집 좋은 백기완도 몇 번 까무러쳤다가 일어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까무러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했을 정도였다. 죽음의 공포가 흰색 건물 주위를 싸늘하게 감싸고 있었다. 전직 상관이자 한때는 수많은 부하를 호령하던 장군들도 일단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일개 하사관이었을 ‘기관원’들의 밥이었다. 그들 위엔 오직 한 사람, 박정희와 전두환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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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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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났습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1979년 10월 청와대. 전날 부산 계엄사령부에 도착해 현장을 둘러보고 온 김재규는 대통령 박정희에게 급히 현지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소요사태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부산대를 비롯한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유신철폐를 외치면서...” “머야? 계엄령이 떨어졌는데도 소요사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경찰들은 그렇다 치고 계엄군으로 투입된 군인들은 뭣하고 있는 게야? 다들 정신들 똑똑히 차리라구, 정신을!” 박정희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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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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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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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08. 8. 5./부산시 동구 초량동 사무실
요약설명 : 구술자의 출생에서부터 성장과정, 부산대학교 학생운동, 부마항쟁, 5·18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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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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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25.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강압통치, 김재규와 장준하, 10‧26 사건의 배경, 송건호 편집국장의 사직, 동아투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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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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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1.9.5.(1차), 9.6.(2차) / 서울시 종로구 회의실
요약설명 : 삶, 10.26사건과 김재규, 박정희에 대한 평가, 서울의 봄과 5·18민주화운동, 85년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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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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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학생 4명에 근신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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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1.6.7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부산대는 지난 7일 동교 민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인 김재규, 이정열, 이희충 군 및 조흥래 군 등 4명에 대해 학칙 54조 3, 4항을 적용, 2주일간의 근신처분을 내렸음이 12일 밝혀졌다. 징계된 학생들은 지난 4월 중순 교련강화 반대데모를 벌인 학생들이 많았는데도 자기들만 징계처분을 내린 것은 총장규탄데모 때 앞장선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주장했다.『동아일보』 1971.6.12. 7면; 『경향신문』 1971.6.1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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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생 1명 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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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1.10.26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부산대는 동교 상과대학 무역학과 김재규 군을 학칙 54조 4항을 적용, 지난 26일자로 제적처분했음이 29일 밝혀졌다. 김 군은 지난 10월 18일 학원자유수호 데모를 주동하려 했으며 10월 21일 사회문제비교연구회의 이름으로 학원정상화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제적됐다.『동아일보』 1971.10.29. 7면; 『부대신문』 1971.1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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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에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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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4.4.25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행정 4) ▲김재규(26, 무직) ▲서창석(23, 연세대 기계 4)『매일경제』, 1974.04.25. 1면제2차 인민혁명당(인혁당)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재건위)사건민청학련사건은 관련 학생운동의 지도부들이 사형이라는 중형을 받았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지도를 받는 인민혁명당(인혁당)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당국의 발표는 국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중앙정보부 발표에 따르면 민청학련은 4단계 혁명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즉 1단계는 민생해결과 민주회복을 명분으로 한 반정부세력의 규합, 2단계는 4월 3일의 일제봉기를 통한 주요 정부기관의 점거와 정권인수, 3단계는 반제 반식민지 반매판을 표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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